사비기 유행을 보였던 백제의 곡절소판형 와당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 와당은 부여지역의 용정리 폐사지, 그리고 청양의 관현리 와요 출토 와례 등을 통해 6세기 3/4분기 이후에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원지는 중국 남경대학 소장 7세기대 와당으로 보아 남조에 있었을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이 와당의 형식은 7세기대를 거치면서 백제의 경우 익산지역까지 전파되었고, 왜의 경우도 7세기 초에 비조지역에 전파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 비조지역의 경우 6세기 후반이후 소아씨의 본거지였음을 고려하여 볼 때 이 와당 형식 또한 백제 와문화와 무관치 않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