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문헌자료를 통해 본 제석사
3. 제석사지 시굴조사와 출토기와
4. 제석사폐기장 시굴조사와 출토유물
5. 출토 기와의 편년과 특징
6. 백제기와를 통해 본 몇 가지 문제
7. 맺는말
요약
제석사지와 그 북쪽 기와요지로 전하는 지역이 시굴조사 되었다. 와요지가 제석사지 화재 잔재물의 폐기장으로 밝혀지면서 『관세음응험기』의 기록은 폐기장과 제석사지에서 출토되는 기와들이 정관13년(639)을 기점, 전후로 편년되어짐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두 유적에서 출토된 수막새는 동범와를 기준 5가지 형태로 분류되는데 사지출토 수막새를 통해 제석사 기와는 화엽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자방직경이 넓어지는 특징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평기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제석사지에서만큼은 암막새와 인각와를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地支銘印刻瓦로 「巳, 毛」와 「巳, 止」는 645년, 「午, 斯」는 646년으로 편년된다. 그러므로 위의 제석사지 출토 기와들은 이 무렵에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곧 제석사지 재건가람은 인각와 출토시기 이후에 완성된 것이다.
부여와 익산에서 주로 출토되는 지지명인각와들도 「夫」, 「申」, 「戊」자가 들어가는 것은 647, 648, 650년에 비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제석사지 지지명인각와의 편년관과 더불어 이 시기 기와가 대량생산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 상황은 백제사의 복원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륵사지는 「巳」를 포함하는 지지명인각와가 집중 출토되고 있는바 미륵사의 완성도 乙巳年(645) 이후 백제 종말기를 거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와요지로 전해오던 유적이 폐기장으로 밝혀지면서 익산의 수많은 유적에 비해 백제시대 와요지로 밝혀진 아직까지 없다. 현재까지 조사된 기와를 비교해 보았을 때 청양 왕진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그 주변에서 주로 공급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