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近畿지역 출토 토기로 본 加耶 新羅古墳의 曆年代
Ⅲ. 3~4세기 近畿지역 출토 삼국시대 토기
Ⅳ. 5세기 近畿지역 출토 삼국시대 토기
Ⅴ. 6세기 近畿지역 출토 삼국시대 토기
Ⅵ. 近畿지역 출토 한반도 토기로 본 고대 한일 교류
Ⅶ.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먼저 고분시대 일본열도의 정치적 중심지인 近畿지역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와 일본열도 토기와의 병행 관계를 통하여 현재 논의가 되고 있는 삼국시대 고분의 역 연대의 설정을 시도하였다. 또 시기별 토기의 이입 양상을 분석하여 가야, 백제, 신라와 왜의 교류의 시기별 주체와 그 변화를 살펴보았다.
3세기 중엽설과 후엽설로 논의되고 있는 김해시 대성동29호분은 近畿지역의 大阪府 加美 1호분구묘 출토 승석문타날호와 久宝寺유적 SK303 출토품과의 병행관계로 볼 때 3세기 중엽으로 비정된다.
경주시 황남동109호분3·4곽, 부산시 복천동21·22호분, 합천군 옥전23호분의 연대는 그에 병행하는 일본열도의 TG231·TG232 출토 초기 須惠器의 연륜연대로 볼 때 4세기 말로 편년된다. 부산시 복천동10·11호분의 연대는 이에 병행하는 TK73형식의 연대로 볼 때 5세기 초로 비정된다.
近畿지역에서는 4세기까지 금관가야양식과 아라가야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다가 5세기 전반에는 신라양식의 토기가 출현한다. 5세기 후반에는 대가야양식 토기가 이입되며 6세기 초를 전후하여 출현하는 승석문타날호는 종래 가야토기로 인식되어왔으나 영산강유역산 토기로 파악된다.
이러한 시기별 토기의 이입 양상은 일본열도 중심부인 近畿지역과의 교류의 시기별 주체와 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5세기 전반 이래 신라의 토기가 금공품과 함께 지속적으로 이입되는 것은 당시의 신라와 왜의 관계를 단지 적대적인 관계로만 볼 수 없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6세기 초를 전후하여 승석문타날호를 비롯한 영산강유역산 토기가 집중 이입되는 것은 이 지역의 독자적인 교섭으로 볼 수 없고 그 공반 문물로 볼 때 백제와 왜 왕권과의 교섭에 의한 것으로 본다. 또한 영산강유역산 토기는 河內의 馬飼유적에서 집중 출토되어 마사와 관련된 이주민 집단이 반입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近畿지역의 馬飼집단은 북부 九州지역에도 이와 같은 토기가 집중한 점에서 영산강유역에 전방후원분을 축조한 북부 구부지역 호족세력의 중계에 의해 移植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함께 6세기대에도 신라토기가 이입되고 신라형 각배가 제작되는 것에서 신라와 왜의 교류가 지속되고, 특히 그 후반에는 奈良縣 藤ノ木고분을 비롯한 신라산 마구가 집중 이입되는 것에서 신라와 왜의 교섭이 본격화된 것으로 본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