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웅진~사비기 고구려계 백제와당의 자료 검토
III. 고구려계 백제와당의 편년
IV. 고구려 제와술의 백제 전파
V. 결론
요약
웅진기~사비기에 걸쳐 백제 사회에 등장하였던 고구려계 와당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공반 출토된 와당과 자방 등의 상대 비교, 장식화 등을 검토하여 이들 와당의 편년을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A형은 5세기 말, B형은 5세기 말~6세기 초, C-1형은 6세기 3/4분기, C-2․3형은 6세기 3/4분기 후반~6세기 4/4분기 무렵, C-4형 및 D형은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편년안은 고구려계의 와당이 웅진천도 이후 사비기까지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웅진 초기에는 고구려계 와당의 모방을 통해 A형이 제작되었고, 이후 무령왕기를 거치면서 고구려와의 관계 속에서 B형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B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주로 살필 수 있는 판단첨형으로 무령왕릉의 은제탁잔, 왕비두침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고구려와 같은 적색 와당이 주류를 차지한다. 특히 웅진기의 유행과는 완전 다른 연화문을 취하고 있어 외래적인 제와술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전체 속성 및 당시 와당 유형들과 비교해 볼 때 B형 와당은 고구려 장인의 기술력 지도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판단케 한다.
사비천도 이후에도 고구려 장인의 제와술을 통해 C형 와당이 등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수공업 체계는 와도겸업체제였다. 이는 고구려의 수공업 체계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새로운 고구려계의 와당 및 토기가 사비천도 후에 부여지역에 등장하였던 사실은 고구려 장인들의 존재로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D형 와당은 C형과 비교해 볼 때 자방에서의 속성 변화 이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귀목형의 자방은 백제 와당(평판화된 자방)에서는 유일한 와례에 해당되기 때문에 왕흥사지만의 특출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한된 유적에서의 표지적인 속성 변화는 부분적인 제와술의 전파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 동안의 백제 와범과 전혀 다른 와범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귀목형의 와당을 제외한 연판, 간판, 주연부의 연주문대 등은 다른 7세기대의 백제 와당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에 C형 와당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의 고구려 제와술은 관찰되지 않는다.
고구려계 백제 와당은 그 동안 백제의 고토에서 10여점 미만이 검출되었다. 출토지도 모두 부여지역이어서 지역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아울러 고구려계 와당뿐만 아니라 고구려계 토기도 검출되고 있어 향후 이들의 전파, 제작과정을 좀더 정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향후 백제 와당과의 비교가 문양 뿐만이 아닌 태토, 소성도 측면에서도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