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5~6세기 신라 주변제국의 와당
1. 고구려, 백제계 연화문수막새 수용
2. 고구려계 연화문수막새
3. 백제계 연화문수막새
III. 5~6세기 신라 주변제국 와당의 제작기법
IV. 6세기 신라수막새의 연원과 편년
1. 수막새의 연원
2. 연화문 수막새의 편년
V. 맺음말
요약
한반도의 통일신라기와는 동아시아 기와 가운데 가장 화려한 양식을 보인다. 통일신라기와의 성장 원동력은 삼국시대 신라기와일 것이다. 신라기와는 고구려, 백제로부터 문양과 제작기술을 수용하여 독창성 있게 변화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나 삼국시대 신라기와는 문양 형식으로 막연히 고구려계, 백제계로 구분하고 있지만. 세부 형식 분류는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이 신라의 와당 발생시기를 6세기 전반(A.D 530년)에 두어 와전연구에 혼란을 초래한다. 본고는 선학의 연구성과와 최근 발굴조사를 토대로 기존의 신라 막새기와의 발생연대를 30년 이상 수정하는 편년을 시도하였다.
먼저 본고의 논지는 6세기 전반 연화문수막새를 통한 삼국의 대외교류를 유추하였다. 또한 신라와당이 백제의 웅진시기 연화문과 형식이 동일하지만 세부적 요소들이 웅진시기보다 선행형식일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아울러 신라연화문수막새는 제작기법에서 낙랑시기와 한성시기 와당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추론하였다. 그리고 월성해자에서 출토하는 여화문수막새를 고구려계의 범주에 넣고 동 형식이 황룡사지에서 등 경주인근 사지에서 보이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제작연대를 6세기 전반으로 비정하였다. 특히 신라기와 연화문은 고구려 고분벽화, 중국 북위시대 漆棺에 보이는 그림과 비교를 하였다. 끝으로 고구려계 신라와당은 길림 혹은 평양지역 와당과 비교연구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고구려의 남하루트 지역으로 시선을 환기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대외교류 연구는 해당유물을 철저히 비교 분석한 형식 및 양식적 특징의 토대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본고는 기와의 수용과정, 그리고 전래된 와당이 어떻게 독창성 있게 변화되고 발전하여 계승하는지 교류적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작성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