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남한지역 출토 고구려토기의 현황
III. 사비양식토기와 고구려토기의 비교 및 편년
IV. 부여 출토 암문토기
V. 사비양식토기의 소성기술
VI. 사비양식토기가 성립한 배경에 대한 검토
VII. 맺음말
요약
고구려적 요소들으 사비기 전 기간에 걸쳐 지속되면서 이전의 한성기 및 웅진기의 토기양식과 구별짓는 새로운 양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는 ‘사비양식’ 백제토기로 설정되고 있는데, 이 논문은 사비기 백제토기에서 관찰되는 고구려토기적 요소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사비양식토기 중 비교검토할 수 있는 개체가 확인되고 있는 전달린토기, 자배기, 대상파수부호, 대상파수부 뚜껑을 중심으로 고구려토기와의 비․계측적 속성과 제작기술 등에서 관찰되는 공통성을 추출하고 편년에 반영하였다.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토기 중에서 암문이 시문되어 있었고 구연부의 구단부를 밖으로 말아 접는 등 고구려의 토기제작기법이 채택되어 있었다. 기형의 모방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제작기법까지 그대로 계승한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또한 소성 단계에서 탄소를 흡착시켜서 제작하는 흑색와기도 고구려토기의 소성기술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토기뿐만 아니라 의식주에 걸쳐서 고구려적 요소가 관찰되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토기의 숙련된 기술을 가진 공인들을 포함한 고구려 주민들의 부여지역으로의 이주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주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료는 없지만 타날된 고구려토기가 출토된 청원 등지가 다시 백제에 의해 수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5세기 후엽 말경 이후에 이루어졌으며 『삼국사기』무령왕대에 실시된 유식자들의 귀농 처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한 것과 능산리 구태묘를 건립한 것은 사비지역에 다수 거주하고 있었던 고구려인들을 회유하고 새로운 국가 귀속감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서 그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