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향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중심으로 그간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을 뿐 고구려와 신라의 향로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신라도 향로를 사용하였고, 불교를 매개로 하여 발전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의 향로는 주로 고분벽화에 나타나는데, 중국 남조의 영향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악3호분 묘주부인도의 향로는 중국 남조 계통의 향로를 수용하였고, 쌍영총 공양행렬도의 향로도 동진의 청자등 또는 청자향로와 기형면에서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장천1호분 불상 대좌에 나타난 향로는 기형으로 보아 豆形향로로 추정된다. 고구려에서는 병향로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동진의 승려 담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법륭사 헌납보물 280호인 작미형병향로는 손잡이 뒷면에는 ‘慧慈’와 ‘帶方’이라는 명문이 있어 주목된다. 이 명문의 주인공은 고구려 승려 혜자로 그가 일본에서 활동했던 기간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향로를 통해 고구려에서 작미형병향로를 사용했던 시기를 6세기 전반으로 추정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병향로가 521년에 개장한 하북성 경현 봉마노 묘에서 출토된 것이고, 고구려와 북위의 외교관계를 고려하면 6세기 전반에는 작미형병향로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금동대향로에는 고구려 및 중국 남조와 북조의 도상들이 혼재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티프들은 인면조신을 비롯해 인면수신, 화염문, 파르티안 샷 등으로 생각된다. 북조의 도상은 외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도상 중에서 코끼리를 탄 인물이나 악어 등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중국의 남북조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두 도상은 백제에 직접 전래된 코끼리와 악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형적으로는 중국 남조의 화상전에 나타난 박산향로와 매우 유사한데, 특히 하남성 등현 학장촌 출토 화상전에 나타난 박산향로는 백제금동대향로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사용되는 향은 중국 남조의 문학작품을 통해 종류와 향의 형태를 알 수 있어서, 백제에서도 수지류의 향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제작시기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를 기준으로 630년대로 추정된다. 또한 백제에서도 고구려와 같이 작미형병향로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는 계율을 중시하였고, 삼국사기의 무왕의 행향기록 등은 이것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향로는 단석산 마애불상군 공양자상의 병향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병향로의 발달단계를 고려하면 작미형병향로를 표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에서 이와 같은 작미형병향로를 사용하게 된 것은 고구려 승려 혜량의 귀화로 추정하였다. 그가 강경에 능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신라의 작미형병향로의 사용은 혜량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