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기 부여 금강사지 출토 자방 이형문 와당에 대해 살펴보았다. 금강사지는 가람의 방향이 동향을 취하고 있어 이전부터 다른 백제사지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금강사지는 1960년대 두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에서 북으로 배치된 1탑1금당식의 가람배치로 확인되었다. 목탑지는 2중의 가구기단으로 추정되어 기존의 가구기단에 비해 웅장함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백제사지와 달리 심초부에서의 심초석(혹은 공양석)은 별도로 검출되지 않았다. 금당지는 단층의 가구기단으로 복원되었다.
금강사지에서는 판구곡절식 와당을 비롯해 판단융기식, 판단삼각돌기식, 연화돌대문식 등 다양한 와당이 출토되었다. 특히 판단융기식이면서 자방 내부에 원숭이 두상으로 보이는 것이 조각된 사례는 백제와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 문양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방 이형문 와당이 중국에서의 경우 이미 북위대에 등장하였음을 볼 때 이 와당의 계통이 북조에 있었음을 판단케 한다.
금강사지 출토 자방 이형문 와당의 연판은 판단융기식으로서 부여 용정리사지 목탑지 출토 F형 와당과 친연성이 찾아진다. 연판만으로 볼 경우 6세기 3/4분기 이후의 것임을 추정케 한다. 아울러 7세기경 백제와당의 자방이나 연판에서 관찰되는 특성이 이 와례에서 파악되지 않음을 볼 때 7세기 이후의 작으로도 판단되지 않는다. 동일 사지에서 출토된 판단삼각돌기식의 와당의 경우 6세기 4/4분기로 편년할 수 있어 이의 제작 또한 비슷한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금강사는 6세기 4/4분기경 부여 은산면 금공리에 창건된 백제 사찰로 고려시대까지 그 법맥이 이어졌다. 1960년대에 발굴조사가 진행된 바 있으나 전면적인 확장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그 전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사지 전체에 대한 전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좀 더 다양한 역사고고학적 자료가 획득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