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자료 및 형식분류
1. Ⅰ1Ba형식
2. Ⅰ3Ba형식
3. Ⅰ1Ca형식
4. Ⅱ1Ab형식
5. Ⅲ2Ba형식
Ⅲ. 受容과 展開
Ⅳ. 용도 및 국제성
Ⅴ. 맺음말
요약
백제 대부배는 몸통의 형태에 따라 Ⅰ․Ⅱ․Ⅲ형식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형식 간 시기차이는 원삼국시대의 기형을 이어받고 있는 Ⅰ형식이 가장 빠르고, 개배의 몸통을 하고 있는 Ⅱ형식이 다음이며, 향완형의 Ⅲ형식이 가장 늦은 것으로 보인다. 경도는 경질에서 와질로 변한다.
대부배는 백제시대에 독자적으로 출현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고 있는 대부배와 같은 형태가 중국의 신석기시대에서 전국시대를 거쳐 한 대에 이르는 무덤들에서 수습되고 있으며, 낙랑의 무덤에서도 발견되고 있어서 매우 주목된다. 낙랑유적에서 발견된 철제 대부배는 우리나라에서 기원후 1세기경 단면 삼각형 점토대토기가 사용되던 시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강릉, 광주, 해남 등에서 철제 대부배를 모방한 것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아산, 보성, 순천지방에서는 타날문토기와 함께 정형화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대부배는 남한강을 통하여 이천, 진천 등지의 백제의 유적으로 유입되어 백제 기종으로 자리 잡았다. 백제 대부배는 이러한 점에서 백제에서 자생한 고유형식이라고 할 수 없으며,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받침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백제 대부배는 한성시기의 경우 중앙에서는 수용하지 않은 기종으로 지방에서만 사용되었다. 또한 백제 전시기를 통하여 변천이 이루어진 토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즉 대부배는 몸통이 포탄형→개배형→향완형으로 변천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백제 대부배는 산성, 요지 등 관방유적과 생산유적에서 확인되었는데, 용도는 일상생활용이라기 보다는 의식에 사용했던 공헌기로 추측된다.
바다건너 일본의 고분시대에 만들어진 스에끼 중에 5세기 후반 경에서부터 8세기 초까지 사용된 すり鉢이 있는데, 형태가 한성시기 대부배와 흡사하므로 5세기경 백제와의 교류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