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북아시아 각국에서는 특색 있는 이식이 만들어졌다. 본고는 그와 같은 이식을 소재로 고대 동북아시아각국 사이의 교류 문제를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만주지역에 분포하는 여러 이식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양식으로 성립한 것은 부여의 이식이다. 부여의 이식은 ‘老河深- 帽兒山- 石湖王八脖子- 望江樓- 彩嵐- 西岔溝墓地’를 연결하는 공간에 주로 분포하며 이것이 부여 경역의 일부일 공산이 크다. 한편 김포시 운양동유적에서 출토된 이식은 부여 이식과 외형이나 제작기법이 유사하다. 따라서 이 자료는 마한사회에도 북방지역의 귀금속 장신구가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둘째, 고구려.신라.백제.가야 등 삼국시대 각 나라에서는 매우 특색 있는 이식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외교관계에 수반하여 주변국으로 전해졌다.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고구려와 신라, 백제와 가야의 이식은 각기 여러 특징을 공유한다. 아직 고구려와 백제 이식의 기원을 밝힐만한 자료는 조사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을 받은 신라와 가야의 공방에서는 자국 지배층이 선호하는 새로운 양식의 이식을 만들게 된다.
셋째, 백제.가야.신라의 이식은 바다 건너 왜로도 전해졌다. 세 나라 가운데 왜와 가까웠던 것은 백제와 가야이며 그러한 관계를 반영하듯 두 나라의 이식이 일본에서 보다 많이 발굴된다. 그 중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완제품도 있지만 백제와 가야 이식을 모방하여 제작한 것이 다수를 점한다. 그 이유는 왜의 지배층이 선호하는 양식을 창출하였기 때문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