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지역 청동기문화는 간헐적으로 수습된 청동유물의 연구를 통해 청동기문화의 중심분포권으로 인식되었다. 1990년 후반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조사되면서 청동기문화의 실체가 명확해졌다. 본고에서는 익산지역 청동기 출토 유적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후기로 설정하여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후기는 동경·동검 등 순수 청동유물을 바탕으로 형성된 전반과 철기가 공반되는 후반으로 구분하였다. 전반은 다뉴조문경, 세형동검, 동착, 동포, 동과 등의 청동유물과 원형 점토대토기, 흑색마연장경호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유적은 오룡리, 용기리, 구평리, 서두리 등에서 (목관)토광묘가 확인되었다. 생활유적은 용기리에서 주거지 1기가 조사된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확인된 유적은 없다. 후반은 세형동검과 함께 철부, 철사, 철촉 등 철기가 공반된다. 토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유적은 신동리, 계문동에서 (목관)토광묘와 구평리, 어양동에서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생활유적은 아직까지 확인된 예가 없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청동기시대 후기의 전반은 燕나라 장군 秦開의 동방경략에 따라 청동기를 기반으로 고조선의 유민들이 유입되면서 금강유역에 정착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반은 위만조선의 성립과 준왕의 남하, 秦漢의 교체 등 청동기와 함께 戰國 燕나라 철기가 유입되면서 馬韓이 성립된다. 곧 마한의 성립에는 중국 戰國鐵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시기는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익산에서 청동유물이 출토된 유적은 북부지역에 집중되며 .帝王韻紀., .高麗史. 地理志, .世宗實錄. 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등 대부분의 기록에 준왕의 남천지를 金馬 郡으로 보고 있어 익산이 준왕과 관련하여 초기 마한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馬韓 초기 가장 강력한 小國 가운데 하나인 乾馬國의 중심지는 만경강을 중심으로 하는 익산 지역임을 알 수 있다.(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