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운양동유적을 중심으로 한강 하류역에서 집중 출토된 철제무기를 주변지역 철제무기와 대비해 본 결과 크게 기에 걸쳐 다원적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세기 중 후반경 한강 하류역에 철제무기가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철장검은 부여 고구려계가 철모는 영남지역의 진변한계가 철촉은 중도문화유형의 중심지인 북한강유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부여 고구려계 철장검에 비해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철제무기는 적어 부여 고구려계 지배집단이 한강 하류역에 정착하여 철기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북한강유역과 진변한 지역으로 부터 철제무기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후 세기 전반에 이르면 북한강유역과 진변한지역 이외에도 경기남부 충청내륙 서해안 지역 등 여러 지역으로부터 철제무기가 대량 유입된다. 특히 진변한계 철제무기가 대량으로 집중 유입된다 한강유역의 다른 지역에는 철제무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데 비해 유독 한강 하류역에만 대량의 철제무기가 다원적으로 집중 유입된 것은 대규모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 확보의 결과였다 진변한과 마한의 여러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철제무기를 공급해준 것은 대규모 전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호함과 동시에 기득권의 유지 및 전쟁으로 창출되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함이었다. 특히 천안 아산지역 세력이 중간 링커로서 무기 공급의 구심체 역할을 하였다 기인 세기 중후반경에도 철제무기가 유입되었지만 환두대도와 연미형 철모의 출현과 대도와 철모의 기능 강화 철촉의 다양화와 첨예화 등 무기 개량과 혁신이 있었다 이 시기의 무기개량 혁신은 기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지만 무기가 현격히 감소하는 등 안정된 사회 분위기에 접어든 것으로 이해되었다 기 이후에는 무기가 거의 출토되지 않고 한성백제 양식의 토기들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이 시기 이후부터 백제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