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시기에 대형 저장토기는 중도식무문토기 甕이었고 타날문대형옹이나 대형단경호와 같은 저장전용의 대형 회색토기는 일반취락에서는 흔치않었다. 다만 풍납토성 라.19호 주거지와 같은데서만 원삼국시대 대형타날문단경호가 여러 점 출토된 바 있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형 타날문옹과 대형단경호를 일반취락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지만 광범한 지역에서 정형화된 양상이 살펴지지 않는다. 4세기 후엽부터 저장용 타날문대형옹의 제작이 늘어나며 취락 내 대형주거지에는 여러 점이 비치되기도 한다. 이후 타날문대형옹은 생산이 줄어드는 듯하며 A식과 B식, 두 가지 성형공정에 의한 대형단경호가 도질토기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경부가 많이 축약된 이 대형단경호는 일반 취락에서 보기는 어렵고 몽촌토성과 같은 백제의 중심지와 교통로의 거점, 혹은 주요 방어유적에서 집중 발견된다. 그 중에도 한성백제 특유의 플라스크형 수혈창고군에서 흔히 발견된다.
도질토기 대형단경호가 제작되면서 중심지에서 대형 타날문옹의 제작은 중단되는 것으로 보이며 주변지역에서는 퇴보한 성형기술로 대형 타날문옹의 제작이 지속된다. 한성백제 시기 중부지역은 토기를 이용한 저장과 수혈식 저장고의 활용이 신라·가야 지역이나 호남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컸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한성백제에서는 수혈식저장고의 발전과 대형 저장토기의 생산 및 보급이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초기국가 단계의 공납체계가 정비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