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관 Ⅷ. 용정리
Ⅱ. 동남리 Ⅸ. 석목리
Ⅲ. 궁남지 Ⅹ. 구교리
Ⅳ. 가탑리 XI. 규암면
Ⅴ. 군수리 XII. 장암면
Ⅵ. 정동리 XIII. 부여 출토 및 출토지 미상
Ⅶ. 가증리
요약
扶餘는 538년에 遷都한 이후부터 멸망할 때까지 100여 년간 백제의 都城이었던 곳으로 많은 銘文資料가 계속해서 出土되고 있다. 부여지역에 대한 조사는 일제시기부터 이루어져 印刻瓦를 비롯한 여러 명문자료가 일찍부터 출토・수습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부여지역에 대한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학술조사와 구제 발굴 등을 통해 꾸준히 명문자료가 축적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부여지역 가운데 東南里, 佳塔里, 軍守里, 井洞里, 佳增里, 龍井里, 石木里, 舊校里, 窺岩面, 場岩面등지에서 출토・수습된 인각와를 비롯한 명문기와와 명문토기 등을 중심으로 명문자료를 정리하면서, 초기에 발견된 명문자료에 대한 혼란을 정리하고, 최근의 발굴성과를 가능한 한 반영하고자 하였다.
부여지역에서 출토된 명문자료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각와이다. 泗沘都邑期의 특징적인 유물인 인각와의 명문은 기와의 생산시기나 기와를 생산 또는 공급한 집단을 표시하거나 檢證印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각와를 생산 또는 공급한 집단은 백제 중앙의 五部나 解氏, 斯氏, 毛氏등 귀족세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명문자료는 백제의 도성제이나, 기와나 토기의 생산과 공급 등 사비시기 백제를 연구하는 데 기초적인 자료로서 활용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