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I. 靑銅器文化의 背景
II. 南山里 出土 百濟土器
III. 南山里ㆍ松菊里 地域의 古代文化 性格
맺는말
요약
남산리에서 발견된 토광묘와 마제석검인들도 송국리 청동기 유적인들과 거의 같은 시기의 청동기문화인들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곳에 처음 들어온 초기청동기인들은 송국리 석곽묘인들임이 확실하다. 이 석관묘의 비파형석검을 소지한 피장자는 부족장급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을 중심으로 세력 개편도 되었을 것이다. 이들 초기청동기문화를 승계한 세력을 송국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 인접부락인 연화리에서 발견된 세형동검출토 석관묘인들이었음이 확실하며 이들의 세력을 더욱 성장시킨 주체인들이 송국리 주거지인들로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송화리 주거지 54지구의 2,3호 출토 3각형석도 제작인들과 55지구 5호 출토 유경석부, 토기 의 소지인들이 그 지역의 말기청동기문화인들이었다고 보아야 될 것 같다. 이렇게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남산리, 송국리, 연화리 일대는 대단위 부족사회가 이루어졌음이 분명한데 이에 해당되는 부족국가는 현 부여로 비정되는 마한의 초리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족사회의 기반은 고대국가로 발전된 뒤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이는 남산리 일대에서 아주 정교한 고식의 백제토기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 사실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남산리, 송국리를 중심으로 한 그 지역 일대가 초기청동기인들이 들어온 후 그 문화는 단절없이 초기철기시대를 거쳐 고대국가로 발전된 후에도 계속된 것이 확실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