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중에서도 백제 유적 내에서 많은 중국도자들이 발견되어 백제와 중국과의 밀접한 교류의 관계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들은 백제시대 고분, 토성 등에서 공반된 토기를 포함한 일련의 유물들의 연대를 짐작하는데 도움을 주며 당시 백제-중국의 교섭관계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3~6세기에 걸쳐 발견되어 당시 백제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뒷받침해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몽촌토성 내에서 발견된 서진대 전문토기편은 3세기후반 농업생산력의 확대를 배경으로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한 백제의 고이왕이 중국 군현과의 충돌하며 영토 확장을 꾀하고 중국군현에 대해 우세를 확보하며 직접 통교에 나선 기록 등의 결과이다.
원주 법천리, 천원 화성리, 서울 석촌동고분 등에서 출토한 중국도자는 4~5세기 초에 걸쳐 동지시대의 청주지방일대의 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백제는 동진과 책봉관계를 맺고 백제의 발전이 본격화하는 4세기에 백제 중앙세력이 중국 교류를 통해 수입한 선망의 중국도자를 지방세력에 하사하여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이를 통해 백제의 영역확대와 동진과의 활발한 외교 등 한성시대 백제의 모습을 일단 이해할 수 있다.
공주 무령왕릉, 익산 입점리고분 등에서 출토된 중국도자는 5세기말~6세기전반 시기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통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양서, 남제서에 의하면 동성왕 12년, 17년 사신을 보내고 무령왕~성왕대에도 양과 지속적이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며 백제 지배층이 중국문물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을 보여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