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지역 백제 고고학은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비롯되었고, 당시 충남지역의 유명 유적의 상당수가 발굴․조사됨으로써 지상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일제기 충남지역 유적조사는 조사된 양만큼 역사적 의미가 추구되지 못하였다. 이는 당시의 학문적 환경과 더불어 비교 자료의 부족에 원인을 둘 수 있는데, 그럼에도 충남지역 백제문화 인식의 뿌리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백제유적 연구과정의 한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해방 후 사회․정치적 혼란 속에 충남지역 고고학 연구도 일시 침체기를 겪게 되지만 유적을 우리 손으로 발굴하고, 연구한다는 소중한 경험 속에 점차 이후의 발전을 위한 토양이 배양되던 시기이면서 무령왕릉 발견 이후 분위기를 일거에 일신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80년대 이후 유적조사는 백제문화권 개발사업, 학술목적의 계획발굴, 구제조사 등의 다양한 수단에 의해 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충남지역 백제문화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낼 수 동기가 부여되고, 그에 따른 연구활동도 매우 왕성하게 전개되어 백제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의 검토 결과가 산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적연구는 발굴이란 고고학적 방법만을 통해서 가능한 현실에서, 발굴이 유적 파괴를 전제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 조사․연구자세가 요구된다. 나아가 올바른 백제문화의 정립, 충남지역 고대문화의 정립을 위해서는 기왕의 백제유적 조사 및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사항들을 문제의식으로 전환하여 보다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