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문헌에 나타난 고대의 喪葬
Ⅲ. 喪과 殯
Ⅳ. 葬送과 遊
Ⅴ. 殯의 이유
Ⅵ. 맺음말
요약
喪葬儀禮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의 複次葬을 행하던 단계와 중국식 殯을 행하던 단계, 그리고 불교적 葬儀에 의해 火葬이 성행하고 殯이 퇴조한 단계의 來世觀은 다를 수밖에 없다. 來世觀은 당대의 사회경제적․문화적 양상의 반영이며 喪葬儀禮를 변형시키는 중요 변수이기도 하다. 喪葬儀禮는 묘제의 변화를 추동한다. 묘제란 喪葬制의 반영이며, 喪葬의 물질적 흔적이다. 따라서 묘제와 부장품에 대한 연구는 喪葬의 해명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厚葬에서 薄葬으로의 변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망된다. 薄葬化에서 橫穴式墓制와 가족장의 보급, 부장품의 감소, 火葬의 출현 등 외형적 변화만이 아니라 喪葬儀禮의 간소화가 보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大化薄葬令에서 “왕 이하 서민들은 殯을 만들지 못하게”하는 규정을 볼 때, 薄葬이란 것이 墓制의 간소화만이 아닌 喪葬儀禮의 간소화, 특히 殯 기간과 시행계층의 축소에 그 목적이 있었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대 일본의 喪葬儀禮가 한반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殯이 의례로서 완성된 것은 6세기, 殯과 誄 의례를 수입한 주체는 백제계 渡來人이라는 견해를 참고할 때 일본의 喪葬制에 대한 접근은 우회적이나마 고대 한국의 喪葬制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新羅弔使에 관한 允恭紀 42년조의 기사, 舒明 卽位前紀에 보이는 蘇我氏 一族의 殯의 구조, 舒明 13年條 百濟大殯, 백제 멸망 후이기는 하지만 天武 朱鳥元年 百濟王 善光을 대신한 百濟王 良虞의 誄 등도 유용하다. 이상의 여러 주체가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고대 喪葬의 실상이 파악될 때, 고대인의 죽음에 대한 관념과 내세관이 선명히 부각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