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발견된 우물은 입지, 규모, 대형건물과 공존하는 점, 다량의 유물을 매납한 점을 볼 때 식수를 얻는 데에 사용한 보통 우물이 아니라 특수한 우물이었다고 판단된다. 우물 주변의 도랑은 강을 표현한 것이었고, 우물과 강의 의례를 주재한 인물은 왕이었을 것이다.
우물 바닥에서 발견된 200점이 넘는 토기류는 우물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차곡차곡 매납한 것들이다. 대부분의 토기류가 백제 지방에서 제작된 것임을 고려하면 우물의 축조와 토기 매납행위는 중앙과 지방의 모종의 관계를 반영한다.
토기 그 자체가 반입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토기에 넣어서 온 물건이 소중하게 취급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서 가능한 하나의 해석은 호와 병에 각지의 물(聖水)을 담아 온 지방세력과 백제 왕이 함께 참여하여 우물에 물을 붓고 그 용기는 우물 바닥에 매납하는 성스러운 우물 제사가 거행되었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물을 매개로 한 일종의 복속의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