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와 백제지역과의 관계는 백제가 성립되기 이전부터로 소급된다. 즉, 두 지역의 문화교류는 선사시대부터 비롯되었는데,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의 서남부지역이 중요하게 된 것은 낙랑군 설치 이후부터다. 북구주(北九州)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이 낙랑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가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지역과 일본과는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루어졌다. 삼각형석도의 분포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이러한 교류관계는 5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빈번하게 계속된다. 5세기대 왜(倭)의 외교상의 특색은 중국왕조와 직접적인 교류를 재개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 고고학적 자료 중 주목되는 것이 횡혈식 석실분이다. 일본에서는 5세기 중엽 경에는 횡혈식 석실이 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횡혈식 석실은 백제에서 도입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6세기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아스카에서 꽃핀 아스카문화(飛鳥文化)는 백제문화가 직수입된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이때에 백제에서 많은 조사공(造寺工)과 조불공(造佛工)이 건너온 것으로 전한다. 실제로 아스카사(飛鳥寺)에서 출토된 창건 당시의 와당은 백제에서 출토된 와당과 흡사하여 백제의 조와(造瓦) 기술이 도입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스카지역의 고분 중에는 화강암을 정제하여 석실분을 만든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도 부여 능산리고분 군과 같은 백제고분의 영향일 것이다.
백제 멸망 후에는 북구주에 대야성(大野城)과 기이성(基肄城)을 축조하게 되는데, 이 또한 백제인의 지도하에 축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성벽은 부여 부소산성과 공통점이 있다.
이상과 같이 일본과 백제는 백제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장기간에 걸친 친선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백제로부터 선진문화를 힘써 배움으로써 일본의 고대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