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특정한 개인의 소유물이었던 고고자료(분묘ㆍ장신구ㆍ복식 등)는 그 개인이 속해 있었던 사회집단 내에서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질이나 장식 정도, 구조나 규모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신분을 밝히는 표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의 삼국시대에는 이와 같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고고자료에 공통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있으며 그 변화는 ‘可視的인 表現’으로부터 ‘簡潔하고 統一性을 重視한 表現’으로 집약된다.
삼국시대의 분묘에서는 금・은・금동제 관・식리・대금구・이식 등 화려한 장신구류가 출토되는데 이들이 피장자의 권력을 나타내는 위세품적 유물임은 분명하다. 이들은 일정한 시기를 경계로 모습을 감추고 이후 출토유물이나 壁畵・俑 등에 표현된 복식이나 장식품은 没個性的이고 획일화된 것이 된다. 동시에 분묘 등에서도 구조・규모상의 규격화와 薄葬化가 진정된다. 또한 사회구성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통제하기 위한 무대장치인 都城制의 정비도 함께 진행된다.
이 변화가 당시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지배자계층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은 분명하며, 그 분포가 정치체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공간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점을 보아도 이 현상이 ‘国家’를 표방하는 집단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고고자료에 보이는 각종 변화는 사회구성원이 일정한 규범 밑에 관리를 받게 되었음을 나타나고 있으며, 단계적으로 확인되는 위상의 차이는 국가가 정한 법질서에 의해 계급 서열이 명확화되었음을 말해 준다. 이는 중국의 법제도를 참고로 한 관료기구와 ‘官人層’이 성립되었음을 나타낸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