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정기시를 통한 전통 경제권의 복원
1. 정기시의 성격
2. 정기시를 통한 고대 유통망의 복원
III. 고분 위계의 검토
1. 능산리형 석실분의 위계 설정
2. 위계구분 및 지역간 비교
IV. 전통경제권과 고분 위계의 비교
V. 맺음말
요약
백제 사비기의 지방통치제도는 五方制로 지칭되며 도성 외부에 존재했을 통치거점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통치거점은 행정·군사적 중심지뿐만 아니라 조세 수취처로서도 기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통치 거점의 위치는 전략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인력 및 물자의 집중이 이루어졌던 지역 단위를 고려하여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적 발전이 더뎠던 고대 사회에서 취락같은 인구 밀집 지역과 교통로의 입지는 다분히 전통 계승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특정 권역내의 교역거점으로 기능했던 조선시대의 정기시들과 이들이 구성하고 있던 네트워크를 검토함으로서 백제 시대 당시의 경제권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사비도성이 위치하고 있던 부여읍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고분군들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단면 육각형을 띄는 소위 ‘능산리형 석실분’의 존재가 일정하게 확인된다. 능산리형 석실분은 설계 및 축조 과정에 중앙 정부의 통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덤의 구조나 규모에 있어 비교적 엄격한 규격화가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고분의 부재로 사용된 석재들의 치석 정도 및 부속시설의 존재여부에 따라 축조에 투여된 공력에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형식의 고분간에 축조 공력의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은 결국 피장자의 사회적 위상 차이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능산리형 석실분의 피장자를 백제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지방관이나 관료화된 토착세력으로 파악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고분의 위계는 당연히 해당 지역의 정치·사회적인 위상과 비교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기시로 표현되는 전통 경제권의 위상과 해당지역 고분군의 위계 정도를 비교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이 제안될 수 있다면 백제 사비기의 지방통치거점을 복원하는데 있어 보다 진전된 논의가 가능해질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