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한성기 간선 교통로와 가야의 발전상
Ⅲ. 웅진기 간선 교통로의 재편성과 의미
Ⅳ. 동진강 하구의 가야포와 내륙 교통로
Ⅴ. 맺음말
요약
전북지역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내륙 교통로의 조직망에 대입시켜 전북지역 백제와 가야의 교통로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성기 백제의 간선 교통로가 통과하는 섬진강 유역은 마한의 지배층 무덤인 말무덤을 제외하면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나 가야계 최고급 위세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지명의 음상사와 단편적인 고고학 자료 만을 근거로 기문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되었지만 가야계 소국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백제의 웅진 천도와 그에 따른 백제의 정치적인 혼란기를 틈타 장수 및 운봉지역의 가야가 그 주변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장수지역의 가야는 금남호남정맥을 넘어 섬진강 상·중류지역과 진안고원의 금산·진안권을, 운봉지역의 가야는 백두대간을 넘어 섬진강 하류지역을 한 동안 가야의 영향권에 편입시켰다. 장수지역의 가야에 의해 강력한 방어체계가 구축됨으로써 한성기 백제의 간선 교통로가 차단되었고, 결국 웅진기 백제의 간선 교통로가 전주를 거쳐 호남정맥의 슬치를 넘는 루트로 재편성되었다. 동진강 하구의 가야포를 가야의 거점포구로 비정하였다. 대가야를 비롯한 영남 내륙지역과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둔 가야계 소국들이 남제 등 중국과 교류할 때 주로 이용했던 국제교역항으로 추론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