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백제 수전 연구 현황
Ⅲ. 화성 송산동 농경유적의 백제 수전과 수로
Ⅳ. 송산동유적을 통해 본 백제 한성기 수전의 일양상
Ⅴ. 맺음말
요약
한국 고고학에서 수전에 대한 연구는 청동기시대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삼국시대와 관련해서는 부여지역의 백제 사비기와 영남지역의 신라․가야 유적이 제한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성 송산동유적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수전과 관개수로는 백제 한성기에 속하는 것으로 중부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되었으며, 백제 한성기 수전의 양상과 당시의 농경취락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송산동유적의 수전과 수로의 조영 시기는 그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절대연대 측정결과 4세기대의 한성1기로 편년된다. 수전은 논둑으로 구획된 계단식의 소구획 논이며, 그 내부에서 어른과 어린이, 그리고 소와 말의 발자국이 다수 확인되었다. 소 발자국은 논 면적이 협소한 점이나 족적이 제한된 공간에서만 나타나는 점에서 우경과는 관계 없고, 농작물의 운반이나 방목의 흔적으로 판단된다. 다른 유적과 비교검토한 결과, 우경은 6~7세기로 편년되는 진주 평거동유적의 논면에서 쟁기흔과 연동되어 소발자국이 확인된 바와 같이, 논 1면이 738㎡정도 되는 규모의 수전에서 실시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농경유적의 발굴사례나 보습과 같은 철제 농구의 출토 양상으로 보는 한 남한지역에 우경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시점은 통일신라시대로 볼 수 있다.
송산동유적의 수로는 말뚝과 잔가지, 진흙 등을 이용해 호안을 만들었으며, 수로의 형태를 비롯해서 벌채시기와 연륜 분석 등을 통해 볼 때 모두 3차례에 걸쳐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수로에서 나온 田자명토기의 예나 원반형토제품이 다수 출토된 점을 고려할 때, 농경과 관련된 제의행위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한성기 농경취락의 경관과 관련해서는 송산동유적의 수전을 둘러싼 북쪽이나 동쪽 구릉의 정상부 및 사면부에 주거공간이 위치하고, 서쪽에 접한 구릉에 분묘공간이 분포하는 취락 구조로 추정된다. 향후, 백제 한성기의 수전 발굴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화성 송산동 농경유적이 가지는 고고학적 의미가 더욱 부각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