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자료의 검토
1. 부안 죽막동 유적의 토제마와 인형토우
2. 하남 이성산성의 토제마와 철제마
3. 서울 풍남토성의 말뼈
4. 나주 복암리 유적의 소뼈
5. 나주 복암리 고분의 말뼈와 소뼈
III. 백제권역 출토 동물희생 자료의 성격
1. 소뼈와 말뼈
2. 토제마와 철제마
3. 백제 제사에서의 소희생과 말희생의 가능성
IV. 맺음말
요약
근래 백제 권역으로 생각되어 온 몇몇 유적에서 소뼈, 말뼈, 토제마, 철제마와 같은 동물 유체나 동물 모형이 출토되고 있고 이들 자료를 백제 동물희생의 자료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복암리 유적이나 복암리 고분 주구의 소뼈 자료의 경우 함께 출토된 제사용 토기나 분묘의 周溝라고 하는 발견위치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제의과정에서 희생된 희생물의 자료일 가능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각 유적의 출토상황이나 유적의 성격을 살펴보면 백제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있고 출토 자료에 대한 해석에 이견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동물유체 자료들의 해석과 관련하여 삼국문화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백제 사회에서 소[牛]를 희생동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부여 우제점(牛蹄占)의 사례나 신라 금석문에 등장하는 살우(殺牛) 희생의례가 있고 소를 죽여서 지내는 제사를 “한신(韓神)”숭배라고 불렀던 일본의 사례도 좋은 참고가 된다.
그러나 말[馬]의 경우 말 관련 자료의 출토양상이나 문헌 전승 등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의 동물희생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풍납토성 말뼈의 경우는 출토 유구가 폐기장이었으며 뼈의 부식 때문에 머리 이외의 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복암리 3호분 1호 석실묘 출토 말뼈의 경우는 희생물이라기보다 말순장의 사례를 상정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식품공헌물의 일종일 가능성까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죽막동과 이성산성의 토제마나 철제마는 모두 윤등(輪登)이 새겨져 있고 말안장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전투마를 형상화한 것이어서 신(神)이 흠향할 제물을 대신하여 마련한 희생물의 대용품으로 보기 어렵다. 죽막동 토제마와 이성산성 토제마의 유사성은 두 유적의 토제마 자료들이 백제 이후의 것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백제의 문헌과 전승 속에서 볼 수 있는 말 희생관련 사례로는 백제 멸망 후의 웅진성 회맹의례이나 나당전쟁 중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白江의 龍(水神)을 낚았다는 전승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의 시간적, 정치적 배경이야말로 말 희생이 당(唐)으로부터 들어온 외래적 신앙요소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