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한국고고학의 편년
III. 철기시대 전기와 후기
IV. 고고학으로 본 마한
V. 고고학 상으로 본 종교·제사유적 -환호-
VI. 마한의 목지국
VII. 마한의 멸망
VIII. 후언
요약
마한의 始原은 한반도에서 기원전 1500년부터 토착사회를 이루던 지석묘사회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철기시대 전기까지 올라가지만 한국선사고고학의 입장보다는 시간적으로 삼국시대 전기(철기시대 후기: 서기 1년-서기 300년)에 그 중심을 두고 역사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이는 마한의 연구는 백제와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중심지의 변천 및 54국과의 관계 등을 항시 고려하면서 진행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영역의 확장 및 도읍의 변천에 따라 漢城→熊津(公州)→泗沘(扶餘)의 세 시기로 구분되듯이 마한의 경우도 백제의 영향 하에 이루어진 중심지의 이동 및 변천에 따라 天安→益山→羅州의 세 시기로 구분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百濟國은 기원전 3세기-기원전 2세기에 성립된 馬韓의 바탕 위에 기원전 18년에 성립되었다. 이는 물론 『三國史記』초기의 백제 기록을 믿고 또 최근 조사된 적석총의 연대가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로 올라간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마한으로부터 臨津江과 漢江유역의 영역을 할양받으면서 점차 정치적 국가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백제는 초기의 문화적 양상이 마한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흔적은 백제시대의 무덤과 유구에서 찾을 수 있는데 積石塚, 土壙墓, 甕棺墓, 馬韓土室의 변형인 福주머니 형태의 지하저장고 등이 해당된다. 이 가운데 積石塚은 高句麗이주 세력의 분묘로 백제 초기의 지배세력에 의해 축조되었으며, 당시 백제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적석총이 축조되던 시기는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경으로 韓國考古學編年上鐵器時代前期 末이며 이를 통해 百濟의 建國이 형성되고 三國時代前期에로 進入하게된다.
그리고 마한 54국으로 표출된 크고 작은 여러 족장사회로 시작된 마한은 백제가 그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축소 개편되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족장사회는 通商圈을 형성하면서 복합족장사회로 발전되었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目支國이라는 국가 체제로 성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三國史記』에 보이는 마한의 신라 및 백제와의 관계기사를 고려해 볼 때, 늦어도 기원전 1세기경에는 馬韓이 국가사회로 성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물론 이 과정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마한과 백제는 그들의 국가형성과 성장에는 주위의 孫吳/東吳, 晋, 南朝중 梁, 衛滿朝鮮, 高句麗 뿐만 아니라 沃沮, 東沃沮, 濊/東濊, 弁辰, 北沃沮(團結), 婁와 같은 족장사회와의 국제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