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선사시대 해양 문물교류의 허브
Ⅲ. 마한의 거점과 해양활동의 중심
Ⅳ. 백제 내륙문화와 해양문화 응축
Ⅴ. 맺음말
요약
군산은 금강, 만경강, 동진강을 따라 내륙과 바다 교통 수단을 배치하였다. 그래서 선사시대 이래 군산은 교통 중심의 전략지였다. 신석기 시대 이래로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양문화와 금강의 내륙문화가 존재했고 이를 신석기 시대 유적이 입증해준다.또 제나라 전횡의 망명으로 철기 문화가 수용되었고 이는 군산의 초기 철기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군산에 마한의 지배자 혹은 지배층 무덤으로 알려진 18개의 말무덤과 100여개의 패총은 해양문화의 번창을 보여준다.
군산에는 2~3개의 마한 소국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국가들은 소금 등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백제 시기에 군산은 많은 백제의 중앙과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한성기에는 서해의 연안항로로 백제 중앙과 교류 및 교역이 왕성하게 이루어져 군산 산월리에서 백제계 유물과 함께 백제 중앙의 묘제가 그대로 수용되었다. 금강과 만경강 내륙수로의 발달하고 군산에서 생산된 소금, 해산물이 교역네트워크를 따라 각지로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웅진 사비기에는 백제의 대내외 관문이자 해양실크로드의 출발지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를 위하여 군산시 임피면에 시산군이, 옥구읍에 마서량현, 회현면에 부부리현, 익산시 함열읍에 감물아현이 설치되었다. (맺음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