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한성기 백제의 교류에 대한 인식
Ⅲ. 금강 유역의 백제시대 유적사례
Ⅳ. 백제 지방사회의 교류와 지역권
Ⅴ. 맺음말
요약
한성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방과 지방사회의 교류에 대한 이해는 교통로와 교류물자에 관한 문제 등 정치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자료를 고고학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으며,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물적 자료 또한 희박하다. 따라서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교류의 흔적을 살피기 위해서, 금강 중류역에서 조사된 유적의 입지와 관련 유구와 유물의 상관성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한성기 백제 지방사회의 교류와 교환경제 지역권을 분석해 보았다.
대상 유적은 금강 중류역의 세종 나성리·송원리, 대평리·장재리 유적과 청원 부강리 유적, 그리고 병천천·미호천 유역의 천안 용원리, 청주 신봉동, 청원 주성리, 원평리 유적을 중심으로 하였다. 이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주구토광묘·토광묘·수혈식석곽묘·횡혈식석실묘가 확인되는데, 특히 고분군과 더불어 생활 유적의 존재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어 금강 유역에 존재했던 한성기 백제 지방사회의 존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금강 중류역의 한성기 백제 지방사회의 경우 금동관이나 금동식리와 같은 위세품을 기초로 백제 중앙과 지방사회 내 정치적 관계에서의 교류를 살필 수 있다면, 묘제와 더불어 광견호와 유견호 같은 지방사회 내에서 공유된 토기기종을 통하여 유사한 자연지리적 환경을 갖춘 지방사회 내에서의 물자 교환체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금강 중류의 수로중심으로 인접해 있는 한성기 백제 지방사회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지방사회 내 물자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유사한 문화환경을 갖춘 지방사회 내에서도 중요 거점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집단이 집중된 위계에 기초하여 백제 중앙과의 정치적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인적 관계의 교류에 있어서는 육로가 중요한 교통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