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전남지역 마한제국의 백제 편입 시기 재론
Ⅲ. 전남지역 마한제국의 사회성격과 배제와의 관계
Ⅳ. 맺음말
요약
전남지역은 경기, 충청,전북지역과 함께 54개 제국으로 구성된 마한 사회에 속하였으며 서울강남지역에서 건국되었던 백제에 의해 마한 제국들이 병합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맨 마지막으로 병합되었다. 전남지역 마한 제국의 사회 성격과 백제와의 관계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서는 전남지역 마한 제국이 백제에 병합된 시기가 관건이 된다. 근초고왕 24년(369)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을 이루고 있지만 성왕 초기에 해당하는 530년경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양자 사이에는 160여 년의 시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마지막 단계의 사회 성격이 크게 다를 수 있으며, 필자는 530년경으로 보고 있다. 전남지역 마한 제국은 청동기시대 지석묘 사회에 세형동검문화가 파급되면서 추장사회(chiefdom)로 출발한 이후, 3세기에는 권역별로 대추장사회(great chiefdom)가 주도하는 연맹체를 형성하여 중국에 견사하는 등의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고, 6세기 초까지 백제나 왜와 교류하면서 단절없는 발전을 지속하면서 고대국가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지역 마한 제국은 전북 서남부에서 전남 서부로 연결되는 서해안권, 나주를 중심으로 한영산강내해권,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권 등 크게 3개 세력권으로 구분되어 발전하다가 백제의 사비천도에 앞선 530년경에 완전히 병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가운데 남해안권은 백제와 왜 사이의 교류에 있어 비협조적인 지역이 됨으로써 가장 먼저 정복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에 자극을 받은 서해안권의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마지막으로 영산강내해권이 백제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영산강내해권의 마한 제국들은 영산강 내해에 고립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교류하여 왔던 큐슈지역이 529년 磐井의 난이 끝나면서 大和정권에 병합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남진하는 백제에 군사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을 택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강유역에서 출토된 6세기 중엽 이후의 백제 은화관식들은 그와 같은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