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말~6세기 전반의 한정된 시기에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지방에 축조된 영산강형 석실은 그 구조적 특징에서 큐슈계의 북부큐슈계와 肥後型(비후형)의 2개의 석실형을 조형으로 하는 직접 관련형과, 그 발전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전남지방에는 일본적인 전방후원분(9기)도 축조되어 있지만, 발굴조사된 6기 중 5기가 영산강형 석실을 채용하고 있어 상관관계가 인정된다. 이러한 왜계묘제가 출현하게 된 것은 백제에 의한 전남지방 영유정책의 본격적인 실행시기와 대응하지만, 그 정책실행에는 왜왕권이나 왜의 여러 지역 수장의 의도하에 이루어졌고, 특히 큐슈북부의 세력은 이전부터 지속해 온 교류를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관여한 듯하다. 백제의 침투 전에 전남의 재지수장 가운데는 왜 세력과 연결된 수장층도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러한 정치적 연결을 나타내기 위해 왜의 분형(전방후원분)이나 큐슈계의 석실이 채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