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의 피장자는 재지적인 고분계열을 갖고 있지 않고, 갑자기 출현하는 과정과 석실의 유형, 조산고분의 자근목형패용의 분포, 江田船山(강전선산)고분의 부장품과 같이 백제계 문물의 분포를 통해서 북부 큐슈와 유명해(有明海) 연안에 출자를 갖는 왜인으로 판단하였다. 전방후원분의 피장자는 고분들이 모여 있지 않고, 상호 분리되어 하나의 분지와 수계를 단위로 하여 분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과 신덕고분 등에서 보이는 백제 중앙의 위신재의 존재를 통해서 백제가 영산강유역의 토착세력을 견제하고, 통치하기 위해 웅진에서 파견된 왜계백제세력으로 파악하였다.
영산강유역에 왜계백제 관련집단이 파견된 것은 한성함락에 따라 일시적으로 통치기구가 와해된 백제가 웅진 천도 이후에 자력으로 남방을 지키게 되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파악하였다. 왜인의 도입과 파견의 주체는 전방후원분의 분포 양상과 江田船山(강전선산)고분의 백제계 문물과 명문대도가 상징하는 것처럼 백제와 왜왕권이라고 파악하였다.
백제가 영산강유역과 가야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6세기 전반대가 되면, 일본열도에서는 종래 가야계 문물이 약하게 되고, 백제계 문물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당시에 오경박사 등을 포함한 백제 문물은 영산강유역으로의 왜인 파견에 대한 대가와 對가야전을 위한 외교 전략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