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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기 백제의 국가제사 체계와 변화 양상 :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9호 유구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 분류 고고·미술 > 건축
  • 권호수 제22호
  • 저자 김창석
  • 발행일 2004년 3월
  • 게재지 서울학연구
  • 발행처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목차

I. 머리말
II. 풍납토성 경당지구의 제사 유구 검토
1. 44ㆍ9호 유구의 발굴 개요
2. 제사의 성격에 대한 기존 견해 검토
III. 국가제사 체계와 변화의 추이
1. 국가제사 체계
2. 제사 체계의 변화
IV. 맺음말

요약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발굴된 44호와 9호 유구는 한성기 백제 국가제사의 성격과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이다. 44호 건물지는 설계가 치밀한 대형 구조물로서 판석과 숯을 깐 溝 시설 등 특수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국가제사지로 추정된다. 9호 竪穴도 말을 희생으로 쓰고 다량의 祭器가 사용되었으므로 국가, 왕실 차원의 제의가 이뤄진 제사갱으로 볼 수 있다. 9호 유구는 유물이 다양하고 비교적 짧은 시기 동안 수차례의 퇴적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 제사의 내용과 성격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말 머리를 바치는 요소는 일본 고대의 기우제나 漢神 숭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교적 성격을 보여주는 雲母도 발견되었는데, ‘大夫’명 직구호와도 관련하여 도교의 대표적인 仙人인 彭祖를 주목해 보았다. 지금 단계에서 9호 제사의 목적을 기우, 軍禮, 역병 퇴치, 延命 가운데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성격이 중국적, 도교적인 점은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44호 제사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고구려 東台子 유적과의 관련성을 검토해보았으나 구조와 형태, 출토 유물면에서 상호 차이가 많았다. 낙랑토성의 孝文廟 추정 유구와는 형태상의 유사성, 특히 暗渠시설의 기술적 공통성이 주목된다. 따라서 한성기 백제의 어느 시기인가 중국 세력과의 교섭을 통해 漢代의 廟制에 대해 알게 되고, 그 형식과 건축물의 구조를 빌어 축조한 것이 44호 유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제사한 대상은 백제의 시조인 東明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東明廟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및 중국 측 사서를 보면, 백제의 국가제사 체계가 5세기 초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腆支王2년(406) 이후로 동명묘 제사는 중단되었고 天地제사도 잠정적으로 중단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풍납토성의 제사 유구는 중도에 폐기되는데, 이를 파괴하고 들어선 9호 유구의 사용 시기가 5세기 중․후반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명묘는 475년 웅진 천도 후 혹은 사비시기에 仇台廟로, 天地 제사는 天과 五帝神에 대한 제사로 전환되는 듯하다. 9호 제사 유구는 다양한 제수용품이나 제사의 복합적 성격으로 보아 위와 같은 백제의 양대 국가제사 체계와는 다른 계통이라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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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민덕식 
    • 발간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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