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이 글은 백제 역사와 예술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연화문와당, 토기항아리, 정림사 오층석탑, 서산마애삼존불, 부여 규암 출토 금동관음보살상,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백제금동대향로 등의 유물에 나타난 미적 특성을 분석 추출하였다. 이런 유물들에는 온화함, 우아함, 부드러움 등이 일관되어 나타나며, 이러한 특성이 백제미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백제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백제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백제는 대외 관계를 중시하였고, 그것은 문화적 개방성으로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환경이 백제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백제는 중국 육조와 긴밀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고 그 예술적 특성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수, 당의 통일전쟁 와중에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가운데, 사비 천도 이후의 백제는 육조문화를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불교는 백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백제인의 미의식도 불교적일 수밖에 없었다. 백제인들은 주위 인간에 대한 특별한 인연을 깨닫고 깊은 연민의 자비심을 품는가 하면, 또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절감하면서 관조와 체념을 통해 달관과 초월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정서가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되고, 미적 특성으로 나타났다.
백제미의 특성에 합당하면서 보다 중심이 되는 한자로 溫과 雅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온아미를 서양적인 의미의 미적 범주에 대입시킨다면 우아미에 해당된다. 우아미에 내재하는 속성들은 백제 유물에 너그러움과 넉넉함에서 비롯되는 평화로움으로 드러나고, 또 대립과 갈등이 없는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면서 명랑성이나 율동성으로 확장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백제 불교의 성격도 미적 범주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불교라는 종교가 표방하는 초월적 신성의 숭고함이 우아함과 결합하면서 백제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인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에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초월적 존재자이자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친근한 인간적 존재로서의 양면성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숭고함을 보유하면서도 인간적 우아함을 강조함으로써 그 상승작용에 의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도의 쾌감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백제 미술품에 있어서 숭고미와 우아미의 결합은 당시 불교의 사상적 분위기를 말해준다. 백제 불교는 지극히 他力的인 신앙이었다. 그러한 신앙층이 예배 대상으로 삼았던 불교 미술품에 나타난 미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숭고미가 많이 약화되고, 그 대신 따뜻한 시선의 인간적인 우아미가 더 강조되었다. 이것 또한 백제미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