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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미술

공산성 출토 칠갑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公山城 出土 漆甲의 性格에 대한 再檢討)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28집
  • 저자 이도학
  • 발행일 2012년 2월
  • 게재지 인문학논총
  • 발행처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목차

Ⅰ. 머리말
Ⅱ. 漆甲에 대한 檢證
Ⅲ. 漆甲의 埋納 經緯
Ⅳ. 맺음말

요약

최근 公州 公山城에서 출토된 貞觀 19年銘 漆甲에 대하여 발굴자는 백제 장수나 의자왕이 착용한 갑옷으로 추정하였다. 그렇게 보는 일차적 근거는 黃漆을 사용한 明光鎧는 백제의 特産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비성 도읍기의 백제 舊都였던 공산성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첫째 공산성에서 출토된 漆甲이 明光鎧라고 하더라도 백제만의 특산은 아니었다. 동일한 시기에 고구려도 明光鎧를 사용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백제가 唐의 貞觀 年號를 사용했어야 할 하등의 당위성이 없었다. 銘文의 연대인 ‘貞觀十九年四月二十一日’ 곧 645년 4월 21일은 漆甲 着用者와 埋納經緯를 살피는데 단서가 되었다. 이때는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였다. 당군이 645년 4월에 개모성을 점령한 후 획득한 고구려 명광개였을 수 있다. 혹은 貞觀 19년인 645년 5월에 唐軍 將帥들이 그 전에 백제가 제공한 명광개를 착용한 사실이 보인다. 이 경우는 당태종이 사신을 백제에 파견하여 황칠 재료를 얻었거나 백제가 제공한 명광개를 착용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唐將이 착용한 貞觀銘 明光鎧는 백제의 손을 거친 것은 분명하다. 백제가 황칠 재료나 명광개 완공품을 제공했든 혹은 漆甲이든 간에 唐將은 이것을 착용하고 고구려 정벌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후에 백제 舊都였던 公山城에 그 존재를 남기고 왔다. 이곳은 의자왕이 피신했던 장소이기도 했지만 熊津都督府가 설치된 곳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唐軍의 발길이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당연히 출토될 수 있는 공간에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게 貞觀銘 漆甲이었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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