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닌 곳은 반드시 전설이 남아 있게 되고 지명 또한 역사에 대응된 전언이 남게 된다. 부여는 본시 소부리의 지명이던 것으로 백제 성왕 16년 봄 웅진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후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던 것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 후 백제 678년 사직이 나당군 18만에 도성이 함락된 후는 남부여가 부여로 남게 된 것이다.
백제왕족은 만주지방의 부여족으로부터 출발하기 시작하여 남하하여 마한 54국 중 백제국을 마한왕으로부터 할양받은 이후 위례성 웅진을 거쳐 최종 소부리에 정도하는데서 남부여국의 국호를 정립한 것을 추정하였다.
성왕이 제3도성을 결정하는 데에는 삼근, 동성 양대에 걸쳐 사비원에 삼차출렵한데서 그 지세가 국도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을 확인하고 성왕 146년 이도한 것으로 추측 된다. 부여의 사비도성 내외의 지명에는 성왕이후 위덕, 혜, 법, 무, 의자왕대에 걸쳐서 123년간 남긴 역사적 지명이 있음에 이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