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신촌현에 대한 문헌과 유적, 유물의 종합적 이해를 전제로 고찰해본 것이다. 신촌현은 당초 신촌, 신촌성이었다가 백제 말기 현으로서 결기군에 영속되고 백제 오방 가운데 북방에 속했었다고 보았다. 신촌현은 고려시대 이후 보령군의 범위와 거의 같았던 범위로 보아 오늘날의 보령군에 소속된 읍면 가운데 주포면, 청라면, 대천읍, 청소면 등을 관할하였다고 추론하였다. 이들 지역은 자연지세상 봉당천 유역과 대천천 유역의 지역 구분이 가능하고, 이 가운데 신촌현의 중심적인 취락이 역시 봉당천 유역에 형성되었으며, 그 증거로 관창리, 신대리, 연지리 지역의 지석묘군을 들었다. 백제의 한성기에는 관창리 고분군과 이웃한 봉당고성이 치소였을 것으로 추론하고, 그후 6세기 중엽시기를 전후하여 보령리 고분군과 이웃한 보다 높은 산성인 당산성으로 치소를 옮겼지 않았던가 추론해 보았다.
신촌현은 대략 250㎢의 넓이를 가졌다고 보아, 이는 백제의 군현들에 있어서 평균 면적인 110~200㎢보다 큰 편에 속하며, 그 이유는 봉당천 유역과 대천천 유역 등에서 성장한 두 개의 세력 집단을 하나로 편제함에서 나타났다고 본다.
신촌현의 호구는 약 600호, 15,000인에서 1,000호, 25,000구가 최대치라고 산출하였다. 이는 백제의 평균 호구수와 비교해서 약간 많은 편이며, 그 이유는 면적 크기와 관계있다고 보았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