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삼국이 모두 기원전 1세기 건국된 것으로 기록될 만큼 큰 변화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마한 동북부에 자리한 백제가 처음부터 교섭한 세력은 낙랑, 말갈, 동옥저, 마한의 4개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동옥저와 마한은 아우르고 있으나 낙랑과 말갈과는 계속 긴장된 상태에서 전투를 거듭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이같은 기록은 서력기원 전후부터 3세기에 이르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는 백제의 초기 발전방향이 한강본류와 그 2대지류인 북한강, 남한강 방면으로의 진출에서 시작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고고학적 성과와도 일치하는 견해이다. 백제가 말갈과 교전하면서도 낙랑과 직접적인 충돌이 없던 것은 백제의 북방 예성강, 임진강방면에 백제 이외의 여러 국읍들이 존재해 있었을 가능성을 볼 수도 있다.
백제는 마한의 여러 국읍을 그대로 두고 지방조직화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는 주변 소국을 병합하여 이를 군현화하거나 성읍화했다는 기록이 없다. 또 웅진기에 이르러 왕의 자제나 종족을 분거케 한 것처럼 사비기에 이르러서야 지방관 파견이 가능했다. 이에 마한 영역은 대체로 백제의 일정한 시기 영역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