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미곡현은 오늘날 보은군 회북면, 회남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이 지역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발견되는 유일한 성지인 미곡산성이 옛 미곡현의 중심된 성이라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미곡현이 백제의 영역이었던가의 문제를 생각하면 출토유물상도 그러하고 신라와의 접경지역이고 주영유권 다툼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백제가 한성기 동남방향으로 소백산맥 북쪽 경사면에 이르는 팽창을 본 것은,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 3세기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제는 청주지방에 진출해서 계속 남하를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5세기 후반 고구려와의 대결에서 수세로 몰린 백제를 신라가 도와주면서도 소백산맥을 따라 일련의 성을 축조하는 기사가 보인다. 백제가 고구려에 의해 남천하게 되면서 이 시기 신라는 상주방면에서 북서진하여 보은, 옥천, 영동 및 문의 등을 영역화시켰고 이 시기에 미곡현은 신라영역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6~7세기 백제가 국력을 회복하고 신라와 치열한 전투를 되풀이한 시기에 미곡현은 백제영으로 귀속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