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의 입지적 특성과 중요성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크게 변모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서울의 도시화가 외곽으로 확산되면서 1970년대 이래 주요한 주택지의 일부분으로 전환되었으며 특히 올림픽 유치와 함께 대부분이 공원으로 지정 보호됨에 따라 그 중요성이 새로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백제초기 온조왕이 처음 위례성을 하남에 천도한 이래 약 500여 년간은 몽촌토성을 비롯하여 주변에 연계되는 토성과 한강 연안의 유적지들은 모두 초기 국가 형성과 발전에 관계된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무대라고 사료된다.
이중에 몽촌토성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행정단위와 자연부락의 기초를 유지해옴으로서 입지적으로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구릉지의 위치가 한강에 연하여 배후습지로 둘러싸여 접근이 어려운 방어 위주의 전초지와 같은 지형적 유리점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된다. 더군다나 외부지역의 다양한 도로망 연계로 보아 교통의 요충지이며 동시에 한강연안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성들 간에 서로 가시권 안에 있는 중앙적 위치를 갖추고 있는 관계로 여러 성들 중에 그 입지적 중요성이 탁월하게 돋보이는 지점이다. 배후에 넓은 沃澤이 발달하여 농업중심취락이 전개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요지이다.
토성의 규모, 형태와 토지이용에서 추정되는 것으로는 토성 축성시 이미 계획적인 틀에 따라 내부를 도로망과 연계하여 기능과 목적에 따라 시설과 거주 지역을 조직적으로 배열하였으리라는 점이다. 최근까지의 현재 토지이용상의 임야로 구분되고 있는 곳이 모두 전작지와 함께 거주지로 확인되고 있어 토성내의 대부분이 집단 거주지로서 중요성이 인정된다. 도한 통로와 연계되는 도로망으로 보아 성 내부도 계획적으로 시설을 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토성의 규모가 동시대의 서구의 고대 도시 규모에 뒤떨어지지 않아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도성기법과 구조적인 배열법이 적용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 계속되는 발굴작업의 진전과 입지 분석을 통해서 밝혀지리라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