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백제 성왕이 사비로 천도한 다음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를 백제말기로 설정하고 이 당시 백제의 국경선을 고찰한 것이다.
북부지역의 제라 국경선은 고구려를 대신해서 한강유역을 장악한 신라가 그 세력을 확장해서 평택과 직산으로 연결된 선까지 남하한 것 같다. 따라서 백제의 북쪽 국경선은 평택과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남쪽으로 접하는 서산, 당진, 아산, 천안 목천으로 연결되는 선이 북쪽 한계선으로 추정된다. 목천 뒤에 있는 차령산맥의 흑선상이 양국 분계선으로 한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부지역에 해당하는 제라국경선은 천안, 목천 전의를 기점으로 해서 청원군 비하동에 있는 부모산성과 문의 양성산성으로 연결되는 선이며 이곳에서는 금강상류를 따라 옥천 과산성까지 분계선을 이루고 그 남쪽으로는 영동 양산의 조천성으로 제라 양국이 접경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옥천의 관산성과 영동 양산의 조천성 전투는 양국간에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며 이 통로가 양국간의 주요 통로이었음도 밝혀졌다.
남부 접경지대는 영동 양산에서 무주의 나제통문을 지나 소백산맥의 자연지세를 이용한 분계선으로 이루어졌다. 소백산맥의 팔량치에 이르러 백제의 세력이 강세를 나타나 함양, 합천, 진주까지 이르는 남강유역을 장악하고 신라와 접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진주지방이 삼국사기 지리지에 백제영현으로 편성되고 백제고분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시적 점령지대가 아님을 입증해준다.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신라의 5만군사가 금현성을 출발하여 연산 황산벌로 진격한 통로는 지금의 상주 백화산성에서 황간, 영동, 양산, 금산, 진산, 연산 황산벌로 통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백제의 국방상 요로인 탄현은 이 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조사결과 금산에서 진산에 이를 수 있고 옥천에서 마전을 거쳐 진산에 이르는 삼거리 요지에 탄현이 위치함을 알아내었다. 지명뿐 아니라 문헌에서도 방증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어 이 같은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해준다.
북쪽 접경지대와 동쪽 접경지대에서는 신라의 세력에 밀려 백제가 많이 침식 당한 반면 남쪽 접경지대에서는 백제의 세력이 상당한 부분까지 신라 영토를 잠식했다. 이는 신라가 동북부 접경지대에 전력을 기울여 빚어진 현상으로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