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본론
1. 적조/적조의 시비
2. 두 가지 표기의 실례
3. 소비포 : 적조/적조의 의미
4. 소비포의 현위치
5. '적'을 뜻하는 고대 고유국어 소비(supi)와 현대 고유국어 '붉다'와의 관계
III. 결론
요약
삼국사기는 ‘所比浦縣’이란 백제 지명을 전하고 있다. 소비포현은 신라 경덕왕이 赤烏縣으로, 고려 때 지금의 德津으로 고쳐 公州의 屬縣으로 하였다. 이곳은 일찍이 견훤과 궁예의 전투가 있었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같이 중요한 지명이 역사책에 달리 나타난다. 이들 지명에 대하여 본고는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출발했다. 첫째 둘 중 하나는 잘못된 표기인가, 둘 다 용납되는 표기인가? 둘째 백제 지명 所比浦縣은 지금 어디인가? 넷째 ‘赤’을 뜻하는 고대어 ‘所比’와 현대어 ‘붉다’의 관계는 무엇인가? 순차적으로 위의 의문에 답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所比浦’․‘所北浦’는 이 지역 방언형의 표기로 보인다. 전자는 ‘소비개’, ‘소이개’, ‘쇠개’․‘쇠애’․‘쇠일’․‘새일’․‘개’의 원형 표기이고, 후자는 ‘소부개’‧‘소북’‧‘새우’‧‘새울’의 원형 표기일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은 편찬자가 所比浦縣 현지민 사용의 지명(발음)에 기초하여 표기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둘째 백제지명 ‘所比浦’와 경덕왕 개명의 赤烏와 신증동람‧세실지의 赤烏는 둘 다 ‘새일’의 표기로 본다. 赤烏(적오)란 표기의 타당성은 현지민의 호칭‧赤烏와 赤鸄‧草五介 표기의 공존, ‘새오’란 지명의 현존에 의한다. 셋째 所比浦縣의 縣治址는 전의 대덕국 회덕면 목상리 일대, 지금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木上洞(행정동)의 木上洞(법정동)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첫째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목상동과 동 新一洞의 경계선에 있는 살포정에서 장군들이 싸웠다는 전설이 있는 점, 둘째 쏜 살보다 빨리 달리도록 말을 조련하던 어떤 장군이 목상동 치마대에서 불모산으로 활을 쏘고 말을 달려가 보았다. 화살이 없어 말을 죽이고 보니 그제서 화살이 날아 왔다는 전설이 궁예와 견훤의 접전지였을 가능성을 높이는 점에서다. 현재 유성구 덕진동이나 새오개(현재 연기군 금남면 부용리 1구), 새오(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동‧도룡동), 쇠일(유성구 구즉동)은 역사상에 나타나는 地名의 移動에 의한 것이다. 넷째 ‘所比’와 ‘붉-’(赤)은 ‘붉-’앞의 ‘새-/쇠-’의 탈락으로 본다. 몽고어로 ‘赤’을 뜻하는 ‘ulagan'은 한국어로 ‘붉-’의 [p] 탈락을 생각게 한다. 이 문제는 더 깊이 연구해 볼 문제다. 다섯째 ‘所比‧赤’의 의미는 ‘여울(灘)’, ‘포구(浦)’이며 ‘金灘洞’(쇠일)의 ‘金灘’, ‘所比浦’, ‘赤烏’의 의미는 灘‧浦의 類義語反復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