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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환경

한성백제시대의 한강유역(漢城百濟時代의 한강유역)

  • 분류 지리·환경 >
  • 권호수 제18호
  • 저자 권학수
  • 발행일 1995년
  • 게재지 韓國上古史學報
  • 발행처 韓國上古史學會

목차

요약

서울지역에 高句麗系 유민의 정착은 최소한 2세기, 늦어도 3세기경에는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百濟의 왕이나 流移民系의 상위 귀족계층들은 기단식·무기단식의 적석총을 축조하였을 것이고, 기타 지배계층은 적석총, 토광묘, 두 묘제의 혼합형 등 다양한 묘제를 채택했으리라 여겨진다. 한편 계층과 관련없이 가장 기본적인 묘제는 백제 건국집단 유입 이전부터 존재한 토광묘였을 것이며, 이것은 한성백제 이전과 이후에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보편적 묘제로 보인다. 한성백제 건국세력의 유입과정에서 이들의 수장의 이름이 실제로 온조였는지 여부나, 이들의 건국연대가 정확히 B.C.18년인지의 여부는 고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AD 2~3세기에는 분명히 한성백제라 불릴 수 있는 정치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토착민과의 역학관계가 어떠한 성격이었는지는 적석총과 토광묘, 그리고 이들 둘의 혼합형의 오랜 공존이라는 고고학적 자료와, 삼국사기 온조 24년 마한왕이 “(溫祚)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 一百里之地 安之”라고 말한 문헌적 자료로 볼 때 서울 주변지역 토착민의 심각한 반발없이 정착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센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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