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삼국사기』지리지의 성격
Ⅲ. 5세기 초~중기의 상황
Ⅳ. 5세기 중기~말의 상황
Ⅴ. 6세기 초~중기의 상황
Ⅵ. 맺음말
요약
본고는 역사지리적 맥락에서 삼국의 접경 문제를 살펴보았다. 5세기 초~중기 고구려ㆍ백제와 관련해서는 한강 유역이 중요시 되었다. 5세기 초 고구려는 충주를 중심으로 남한강 유역과 북한강 유역의 루트를 확보하고 있었다.
5세기 중엽 이후 삼국의 접경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한강 유역의 영유 문제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지리지는 서로 다른 시기의 상황을 시점으로 하면서도 이를 평면적으로 나누고 있어서, 삼국의 영역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상을 담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삼국사기』지리지에 보이는 한반도 중부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군현 관련 자료를 통해 고구려가 이 지역을 일찍이 지배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475년 고구려의 한성 강습 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기 보다는 백제의 완충지대 또는 접경지대였다고 파악된다.
한편, 5세기 중~말기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과 관련해서는 신라가 471에 축성한 삼년산성(충북 보은)이 주목된다. 신라는 보은 지역의 확보를 통해 고구려의 충주지역에 대한 견제와 함께 백제 지역으로의 진출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480년 이전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은 동해안 일대였으나, 480년 이후에는 중부 내륙지역으로 집중되고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은 고구려군이 소백산맥 북쪽으로 퇴각하게 되는 6세기초에 안정되게 된다. 신라는 법흥왕 11년(524)에 沙伐州(상주)를 설치함으로써 이를 발판으로 이후 죽령과 조령을 넘어 충주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한편, 백제와 고구려의 접경이었던 한강 유역은 백제 성왕 초기인 529년 즈음 고구려에게 넘어가게 되고, 551년에 백제ㆍ신라ㆍ가야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략하여 다시 한강 상ㆍ하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6세기 중반 신라는 서쪽으로는 한강 하류 지역, 동북쪽으로는 안변에서 북한강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