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권역 설정 및 간선교통로의 조직망
Ⅲ. 가야계 고총의 분포양상과 그 의미
Ⅳ. 임나사현, 기문과 대사의 위치비정
Ⅴ. 맺음말
요약
우리나라 전통지리학의 지침서인 『산경표』를 근거로 진안고원과 운봉고원, 섬진강유역으로 나누었다. 한성기 백제의 간선교통로가 통과하는 진안고원의 금산·진안권은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발견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부터 기문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 섬진강유역은 4개소의 분묘유적에 30여 기의 마한계 분구묘를 제외하면, 가야계 소국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가야계 고총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안고원의 장수권은 백두대간의 육십령로 관문이자 봉수왕국으로 말무덤이 계기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200여 기의 가야계 고총으로 발전하였다. 백두대간의 치재로가 통과하는 운봉고원에는 100여 기의 말무덤과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남아있다.
임나사현은 여수·순천·광양과 섬진강 하류지역 일대로 보았다. 기문은 521년까지 문헌에 등장하는 가야계 소국으로 100여 기의 말무덤과 가야계 고총이 밀집 분포된 운봉고원과 그 주변 지역으로 비정하였다. 운봉고원의 가야는 백제와 가야의 교류관문이자 철의 왕국으로 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처음 등장해 6세기 중엽까지 가야계 소국으로 존속하였다. 백제는 513년부터 3년 동안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반파와 갈등관계에 빠졌는데, 이를 섬진강유역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본격적인 가야진출로 파악하였다. 운봉고원에서 시작된 내륙교통로와 섬진강 내륙수로가 서로 교차하는 전남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 일대를 대사로, 경남 하동을 다사로 비정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