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은 전으로 구축한 묘실의 구조와 내부 유물들이 동대의 타 2국의 경우와 달리 중국 남조와 너무나 유사하여 남조의 묘를 그대로 옮겨세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매장사상면에 있어서는 묘지선정이나 묘문과 동일한 방향을 취한 왕, 왕비의 두향은 남경에 다수 분포하는 남조묘들의 사상적 배경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이는 풍수지리사상으로서 주대에 이미 문헌에 나타나고 고고학자료로서는 은대에 출현하여 전국시대에 실용제도로서 확립되고 한 대와 남북조시대 특히 양자강 연안에서 성행하였다.
남경의 建都부터가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위치가 정해지고 묘지들을 집중시켜 북망산의 성격을 지닌다. 이는 공주와 송산의 위치와 성격, 지형이 남경과 합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가 새로운 천도지로서 공주에 정도한 것에서부터 송산에 왕가의 묘지를 설정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는 반드시 그 위치와 지형일 수 밖에 없는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두향이 묘문과 동일한 방향으로 취한 것도 풍수지리적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과로서 주대 이후 北首의 개념을 來龍의 방향으로 변화시킨 오랜 전통을 그대로 채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에 있어서의 한대 이후의 정치 사회의 기본적 사상을 이룬 음양오행사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매지권, 오수전, 일각진묘수, 봉황두, 사신경, 두족침에 나타난 문양 등 이런 요소들은 묘지선정 두향과 함께 무령왕릉에서 비로소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령왕릉을 통해서 당시 백제사회가 가진 선진외래문화의 수용 자세의 일단을 알 수 있다. 가변적인 기술문화의 산물인 유물에서는 당시 축적된 내재적 요소와 종합하여 새로운 백제화를 이룩하고 불변의 원리 사상에 대해서는 원상 그대로 받아들여 실용화하고 있다. 이는 백제문화의 한 특성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