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문화권의 형성은 우리 민족문화의 형성기인 청동기시대부터 비롯된다. 익산지방은 금강과 만경강을 끼고 있어서 수로 교통의 중심지였고, 국방상의 요새지였으며,자연동의 생산과 농업 생산력이라는 산업상의 호조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익산지방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이나 도씨검, 그 외에 수 많은 청동유물은 대동강 유역과 함꼐 우리나라 양대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 이러한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한 정치세력의 대두는 곧 마한소국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마한은 B.C 3C경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마한의 중심지적 역할을 담당하던 익산지역에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의 공격을 피하여 남래하게 된다. 수천의 무리를 거느린 준왕의 남래는 익산지역의 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는 익산지역 마한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이룩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마한의 맹주적 역할을 하계 되는 진왕의 등장인 것이다.
진왕은 마한 54개 소국 중 목지국을 다스리고 있는 바 익산지방에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밝혀진 목지국의 실체는 금마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읍과 그에 종적인 관계로써 몇 개의 읍락으로 구성되어져 있있다는 점이며, 이는 중국측 문헌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목지국이 과연 언제까지 마한의 중심지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백제세력의 남하와 함꼐 영산강 유역으로 남천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