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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551년 한강 하류 유역 영유국 문제에 관한 고찰(475-551년 한강 하류 유역 領有國 문제에 관한 考察)

  • 분류 기타 >
  • 권호수 제33권 제1호
  • 저자 윤대준
  • 발행일 2010년 봄
  • 게재지 정신문화연구
  • 발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목차

I. 머리말
II. 475-551년 한강 유역 영유국에 관한 논쟁
III. 관련 사료의 지명 검토
1. 『삼국사기』백제본기 기사의 검토
2. 삼국사기 지리지 기사의 검토
IV. 한강 이남의 고구려 유적
1. 관방유적
2. 고분유적
V. 맺음말

요약

본고는 먼저 475-551년 한강 유역 領有에 관한 최근의 논쟁에 대해 살펴보고 대표적인 관련 사료인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사기』지리지 기사를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현 단계에서 고구려 계통의 관방유적이 영역 문제와 관련하여 그 의미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짚어보았다. 그리고 끝으로 고구려 영역지배의 적극적인 증좌로써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고구려 계통의 석실분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사료의 신빙성에 관한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사기』 지리지는 동등하게 위치 지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백제본기가 전하는 475-551년 사이의 영역 관련 기사는 그대로 신빙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은 반면, 지리지의 기사는 백제본기 기사와의 상치를 제외한다면 딱히 불신할 만한 요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한강 하류유역 이남, 현재의 경기도 남부지역이 552년 신라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명백히 고구려의 강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임진강과 한강 직근 거리에 있는 고구려 관방유적은 대부분 한강 이북에 위치해 있음으로 고구려 한강 유역 영유설에 대한 증거로써는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인다. 대전 월평동유적이나 청원 남성골유적 또한 한시적인 방어시설로서 이러한 성격의 유적으로는 고구려군의 장기주둔과 영역지배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 1970년 여주 보통리와, 2000년 이후 성남 판교동, 용인 보정동, 화성 청계리에서 발굴조사된 석실분 7기 모두가 고구려석실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강 하류 유역을 위시한 경기 남부지역에서 백제 계통의 지배층 고분이나 관방유적이 전무한 현 시점에서 이러한 고구려 계통의 석실분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에 힘입어 필자는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경기 남부일대의 고구려석실분은 그 지역의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던 고구려 지배층의 무덤으로 판단하였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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