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어는 정치사적인 고증으로 백제어는 마한어라는 기원이나 이병도의 진한어 계승 등은 언어외적인 사실로 국어사적 사실을 통해 적극적 논증을 해야 한다. 지명어미 비리가 충청, 전라도에만 존재할 뿐 그 이북에서 결코 보이지 않는 다는 점과 온조, 비류가 입도한 지명에서 비리가 아닌 홀이 발견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며 이는 백제어가 비마한계어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는 본기와 열전을 통해 많은 통시적 사실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백제어의 형성 및 변천표와 지도상에 지명분포도 등을 제시하였다.
백제 전기 언어자료의 특징은 신라 경덕왕대에 단행된 지명 개정 작업 이전부터 한화된 사례가 있었으며 또한 지명개정은 영유권이 바뀐 지역에 대해 이루어졌으며 삼국사기 지리4의 고구려 지명 중 고유지명은 대개 백제의 전기지명임을 역설한다.
백제어와 가라어는 서로 친근함을 보이며 둘 사이에 맺어진 관계가 계통적으로 자매성을 띠는지 교류에 의해 이루어진 언어계통의 결과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바로 백제어와 가라어의 관계이다.
고대 한반도의 중부지역 지명어와 일본어를 비교하면 상이함을 보이는 것이 많다. 이는 문화교류 과정에서 언어의 유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라제국과 일본은 위치가 가장 가깝고 임나가 일본의 속국이라 주장하리만큼 서로 친근성이 있어 교류도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백제가 마한을 통합하기 이전까지의 백제어의 동유로는 백제->가라->일본과 같이 가라가 그 교량국이었을 것이며 그 이후에는 전남 강진, 군산포를 통해 직접 건너가게 된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