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악을 구성하는 당악과 고려악 중 고려악이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의 악사와 악생 및 남북국시대 발해의 악사와 악생이 각기 자기나라 향악을 갖고 대화조정에서 음악활동을 전개시킨 과정에서 생긴 결과임을 알았다. 삼국 중 백제악사가 가장 먼저 일본에 파견되었고 이어서 신라와 고구려가 각기 본국의 악사를 나량조정에 파견하였다. 554년 이전부터 백제악사가 활약하고 신라악사는 561년부터, 고려악사는 570년부터 각각 활약하였으므로 대화조정에서의 삼국악은 6세기 후반에야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량시대 삼국의 향악을 연주했던 중요한 향악기는 횡적, 금, 막목, 군후 등 4 종류였다. 신라악사가 가르친 금은 현재의 풍류가야금처럼 생긴 신라금이고 백제악사와 고려악사의 횡적은 현재의 젓대처럼 가로 잡고 부는 관악기의 일종으로서 후에 백제적 또는 고려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에서 백제금으로 알려진 백제악사의 군후나 고려악사의 군후는 모두 현재의 거문고와 약간 다르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옛 거문고이며 백제약사와 고려약사의 막목은 현재 고려악에서 연주되는 필률과 관련했으리라 추정된다. 이 4악기는 모두 삼국시대 본국에서 연주되던 중요한 향악기였는데 삼국악사들이 일본에 파견될 대 그것들을 전해주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파견된 악사들은 일정한 관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은 도래한 삼국의 거류민 중에 뽑힌 악생들을 가르치며 일정 기간 임무 완수 후 귀국하였다.
848년 당시 왕립음악기관이었던 아악료의 악제개혁 때 삼국악은 고려악이란 명칭 하에 통폐합되고 중국음악과 동남아시아 음악을 통폐합시킨 당악과 대칭을 이루어 현존 일본아악의 한 기둥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옛 거문고로 밝혀진 군후 및 신라금으로 드러난 금은 고려악에서 연주되지 않고 고가 고려악의 연주에 포함되었다. 그 후 횡적과 막목은 고려악에서 계속 연주되었다. 9세기 후반 이후 고려악의 횡적은 고려적 , 고는 삼고, 막목은 필률로 개정되어 전승되며 일본화되었다.
현존 일본아악의 고려악의 역사적 유래는 상고사회 향악의 바탕 위에 자주적으로 수용한 외래악기에 의해 새롭게 발전된 향악 곧 한국음악을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에 삼국악사와 고려악사가 대화조정에 가르쳐준 삼국악과 발해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