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 중심지로서, 국방상의 요새지로서, 그리고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상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익산지역은 일찍부터 청동기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政治勢力의 등장은 곧 馬韓小國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국과도 교류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익산의 馬韓小國에는 古朝鮮의 準王이 南奔하게 되고,準干의 南奔을 계기로 대동강유역의 선진문물이 대거 이입되어 이를 통해 익산지역의 馬韓小國도 정치적 발전을 가져와 馬韓의 맹주국으로서의 目支國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百濟의 성장과 함께 馬韓의 영역도 점차 잠식되고 결국 익산의 目支國 세력은 영산강유역에서 일정한 시기동안 유지되다가 최후를 맞게 되지만 익산에 남아 있던 잔여세력은 그 나름대로의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익산 세력과 결탁하여 왕권의 강화와 百濟의 중흥을 꾀하기 위한 武王의 益山遷都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익산문화권 연구는 주로 청동기문화나 馬韓과 百濟文化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 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조사를 통해서 보면 백제 멸망 이후에도 익산지역은 地政學的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는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유적들이 통일신라시대에도 더욱 확대되거나 보강되어진다고 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우선 彌勒寺址는 통일신라시대에 남쪽으로 더욱 확대되면서 유지되고 있다고 하는 점, 王宮城에서는 백제시대 유물 외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고 하는 점, 1.8km에 달하는 거대한 彌勒山石城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점, 그리고 많은 城郭들이 통일신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土城을 石城으로 개축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문헌상에 보이는 安勝의 報德國說이나, 後百濟 견훤의 都邑說 등과 관련지어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필자 맺는말)